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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85

연애하는 날

 

 한 여자아이의 모든 걸 이해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어리석게도 그 아이의 손을 거리낌 없이잡을 수 있을 때가 아닌, 그 아이의 바뀐 전화번호 조차 모르던 시기에 그랬다. 몇 년을 그렇게 이해하려 노력했고, 희미하게 잡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걸 그 때 알았다면, 난 그 아이의 손을 잡았을까. 그 아이 교과서에 내 이름을 큼지막하게 적었을까. 아마도 그때의 난, 알기가 두려워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최인석의 장편 연애, 하는 날은 그러한 두려움이 곳곳에 묻어있는 소설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상대의 마음 뿐 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숨는다. 서로가 다른 꿈을 꾸며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자연스레 다른 꿈을 꾸며 아파한다. 그리고 바다로 갈 용기 없는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수족관이 바다인양 헤엄쳐 다닌다.

 소설을 읽으며 몇 번이고 내 마음을 사로 잡은 부분이 있었다.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왜 수진은 그렇게 장우와의 사이에서 가진 아이를 낳으려고 했을까. 자신의 가족을 등지고 입에 대지 않던 술을 마시고 몸을 혹사시키면서, 이러한 것들이 자신 뿐 만이 아니라 아이에게도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 왜 낳으려고 했을까. 단순히 죄책감 또는 장우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아니면 장우와의 사랑을 남은 아이로라도 이루고 싶었던 것 일까.

 마지막 페이지에서 손을 떼고 나서도 누군가가 계속해서 마음을 건드렸다. 그 누군가는 짓궂게도 이들을 외면하지 말라고 내게 외치는 것 같았다. 난 그 누군가가 타자인지 내 자신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지칠 줄 모르고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사랑이, 아픔이, 안타까움이, 비겁함이, 속상함이 실제가 아니라 허구라고 믿고 싶은 내 맘을 아는 것 같았다.

 작가는 모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연애, 하는 날이라는 제목에서 하는 날이라는 말이 이상하게도 상처를 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이유는 연애를 못하다가 하는 날 같아서라고. 소설 속 그들은 알고 있을까. 현실의 우리도 그들과 같다는 걸, 우리도 연애 하는 날이 어색하고 불편할 만큼 연애와 하는 날 사이에 쉼표를 붙여야 한다는 걸.

 

 

- 연애, 하는 날(최인석)

답답하지는 않다. 그저 먹먹할 뿐.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사랑이, 사람 사이가 이리 철학적이었던가

 

- 박정희의 맨언굴(유종일 엮음)

우리 경제성장의 주춧돌이 어떠한지 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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