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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85

당신들을 위하여


부제 : 너나 처먹어라

  오늘 오후 3. 학생총회가 열렸다. 학생 정원의 10%를 모아야 하니 우리 학교는 1600명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6시가 될 때까지 인원이 부족해 개회 불가능. 수업이 끝난 일군의 공대 병력들을 강제차출한 뒤에야 학생총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시스템 상으로 확인된 참여자는 1890. 학생총회가 개최되고 3개 안건과 기타안건, 하나의 현장발의가 이루어졌다. 4.9% 인상, 2.5% 인하에 대한 잔여 인상분(?) 등록금 환급 전원찬성, 등록금 인하와 함께 줄어든 교양과목 수 원상복구. 역시 전원찬성. 단과대별 요구사항 수용, 2명 반대. 2명을 제외한 참가자 나머지 전원찬성. 그리고 대망의 기타안건. 등록금 15% 인하. 전원찬성.

  첫 번째 문제는 안건의 발의와 통과에 관한 문제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전원찬성이란 전원반대와 다름없는 단어다. 물론 이것은 학생총회 주최측의 잘못이다. 중앙운영위원회의 안건 제시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등록금 환급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묻겠습니다! 찬성하시는 분 푸른색 비표를, 반대하시는 분 붉은색 비표를 들어 주세요."
"교양과목 수 복구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묻겠습니다! 찬성하시는 분 푸른색 비표를, 반대하시는 분 붉은색 비표를 들어 주세요."
"단과대별 요구사항 수용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묻겠습니다! 찬성하시는 분 푸른색 비표를, 반대하시는 분 붉은색 비표를 들어 주세요."
농담하는 것 같겠지만 진짜다. 어떤 이유로 저런 안건이 나왔는지, 저 안건을 실행시킬 경우에 대한 반대급부, 저 안건을 실행하기 위한 중운위의 계획은 시스템상에 기록된 1890명의 학우의 상상속에 맡겨졌다.

  두 번째 문제는 레지티머시에 관한 문제이다. 학생총회는 학생 정원의 10%가 모여야 한다. 그렇다면 학생 정원의 10%가 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학생총회로서의 의결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학생총회의 시스템은 신분증 및 학생증을 두 개 출구에서 확인하고 입장시키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둘 모두 확인받지 않고 입장했다. 그리고 어디서도 중도 이탈자를 집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원 찬성과 전원 찬성에 근접한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이루어진 이 학생총회는 과연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시스템상에 기록된 1890명의 학생들은 안건이 제기될 때 마다 1600명대의 찬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모든 반대표는 전 학생총회를 통틀어 단 두 표 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290명의 무효표가 나온 학생총회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1890명이라는 가상의 숫자를 어깨에 이고 진행된, 몇 명의 학생들의 좌파성향 운동으로 보아야 하는가.

  세 번째 문제는 과연 이 학생총회를 통해 웃는 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이다. 학생총회 현장발의에서 나온 안건은 행정관에 가서 총장 면담 계획을 잡자는 것이다. 물론 학생들의 의견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찬조발언으로 뛰어올라온 수의대 모 학우는 지금 당장 행정관으로 향하자고 발언했다. 중운위는 다시 한 번 투표를 진행한다. 이미 1600의 정족수는 무시된 지 오래다. 부족한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중운위는 거듭 투표를 진행한다. 결과는 찬성 1561, 반대 무. 그리고 중운위는 학생총회 폐회를 선언함과 동시에 부결된 행정관 점거에 동참할 학우를 모집한다. 경영대, 예문대, 공과대 등등 수많은 단과대들이 빠르게 총회장을 이탈했다. 결국 중운위를 따라 행정관 앞으로 향한 시위대-1600명이 넘지 않으므로 더이상 학생총회라는 표현은 부적당하다.-는 정치대와 문과대, 그리고 지난 해 물의를 일으켰던 특정 선본 뿐이었다.

  이번 학생총회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은 학우들의 학교에 관한 무관심과 학생 중심의 이기주의 뿐이었다. 등록금을 인하하라. 좋다. 그렇다면 학교는 과연 어디에서 그 인하분에 대한 손실을 복구할 것인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그러나 모든 학생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학교는 남는다. 교직원과 고용인, 시설과 자재. 학생들이 받는 이익은 곧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의 손해이다. 교양과목을 늘리라. 좋다. 우리는 이미 2학점인 과목이 3학점 과목이 된 것을 본 예가 있다. 과목당 학점이 늘어난다면 우리는 교양과목이 늘어나는 것과 관계없이 교양과목을 듣지 못할 수 있다. 다른 예로 아무 연관없는 과목을 강의해야 하는 시간강사에 대해 생각해 보라. 지성의 요람은 대학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 지성을 먹고 성장하는 대학생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 지성이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과연 그들이 우리보다 지적으로 열등할지를 생각해 보라. 우리가 착취당한다고 느낀다면 착취하는 자들이 우리보다 영리하고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얻을 수 있는 것과 얻기 위해 잃어야 하는 것을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 등록금 15% 인하를 말하면서 동시에 교양과목 확대와 단과대 요구사항 수용을 원한다는 것은 저렴한 가격으로 맛좋은 빵을 많이 먹고싶다는 말이다. 혹자는 학교가 학생을 위해서 당연히 베풀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단어를 바꿔보자. 낮은 학점과 무능함으로 연봉 높은 기업에 입사해서 긴 휴가를 누리고 싶다. 학교의 본분은 교육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인 이상 영리목적과 별리될 수는 없다. 구성원을 가지고 있는 스스로를 운영하는 집단은 필연적으로 영리를 추구해야 하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 집단이 고려해야 할 문제는 단지 도의적인 선상에서의 문제 뿐이다.

  오늘 내가 보았던 행동은 학생들의 민주주의 의식 고취도, 거대 대학 재단에 대한 학생들의 투쟁도 아니었다. 단지 미숙한 신입생들을 데리고 설명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학생총회에서 12년만에 이루어졌다는 감성적 반응 유도를 통해 이끌어낸 학교에 대한 막연한 반항심. 대응 없는 비난 뿐이었다. 왜 그들은 아무도 원인과 결과, 해결 방안과 그 절차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것일까? 시간이 늦어서? 그들은 학생총회가 폐회된 이후로 약 40여분간을 행정실 앞에서 농성했다.

  권리 쟁취는 당연한 것이다. 소속된 집단에 더 많은 이익이 돌아오게 함 역시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과 한 쪽을 먹는 순간 다른 누군가는 그 사과를 먹을 수 없다. 테이블에는 셋이 앉아있다. 학생, 재단, 교직원 및 학교. 학생과 재단이 피해를 입지 않으려 한다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형광등이 나가고 책상이 삐거덕거리는 것, 건물 내외부를 청소하시는 분들이 부족해지는 것. 그 피해는 과연 누구인가?

  우리가 얻으려 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정당함이 과연 우리가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얻기 위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어야 하지는 않는지, 우리가 과연 이것을 얻으려 하는 것이 타자의 견해가 들어가지 않은 우리 스스로의 생각인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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